E Pluribus Unum

민승기 Seungki Min

2010년 5월 29일

 

 

 

 

 

며칠 전에 대한치과의사협회에서 개최한 치과의료 정책포럼에 참가했다. 참가 도중 지난달에 미국교정학회(이하 AAO) 에서 있었던 일들이 기억났다. 올해의 AAO 모임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개최되었는데, 학회 일정이 끝나고 국회의사당의 천장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나 이 글을 쓰게 되었다.

 

AAO에 참가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6년이 지났다. AAO는 대의원회의, 이사회 및 9개의 자문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하에 8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대한치과의사협회와 경기도지부의 대의원 총회에 참석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대의원제도가 어떻게 운영될까 궁금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AAO 의 대의원회의에 참관해 보기로 했다. AAO 대의원회의는 학술대회 기간 중 2회에 걸쳐 열리는데 올해의 주요 의제는 AAO에 회원으로 입회할 때 ADA의 회원자격을 요구할 것인지 여부, AAO 회원 명부의 출간 중지 여부, 약 230만 불의 대국민 홍보 비용 지출의 승인, AAO 신용협동조합의 출범과 수련의에 대한 대출제공의 타당성 조사 및 교정 보조원 인증제도의 도입 등이었다. 이러한 의제들이 논의된 AAO 대의원 회의에 참여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어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째 회의의 진행이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지부 의견 조율을 위한 휴회시간을 너무 요구하지 말라고 사회자가 약간 언성을 높이는 정도가 눈에 띄었다. 둘째 대의원 개개인이 회의 진행에 매우 익숙한 것으로 보였다. 이는 아마도 수백 년 전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이 회의를 거쳐 하나의 합중국으로 만들어진 미국이라는 나라의 후손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캐나다 교정의사인 의장의 사회 아래 동의와 의제의 변경에서 의사진행 발언 등이 숨돌릴 틈 없이 빠르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보통 회의를 진행할 때 회칙 개정과 같은 의제를 다루는 경우 집행부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미국 대의원 회의에서는 단어 한 개 한 개의 선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의원회가 회칙을 세밀한 부분까지 자세히 정해주면 집행부는 회칙을 들고 다니며 집행하는 느낌이었다. 각 지부 대의원들은 회의 진행 중 필요한 경우 즉시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휴회를 요청하고 참관중인 소속 지부 이사들과 5분 정도 회의를 통해 지부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회의 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나간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학술대회 일정 마지막 날 아침에 AAO 대정부위원회 주최로 20명 정도의 회원이 모였다. 의회를 대상으로 로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전문 로비 회사 직원과 변호사들로부터 두 시간 정도의 교육을 받고 의견조율을 했다. 전문 로비스트가 회원들을 상대로 국회의원 보좌관의 역할, 보좌관의 특징, 보좌관을 대하는 법 그리고 AAO가 국회에 조속히 통과시켜주기를 바라는 법안과 폐기해주기를 바라는 법안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교육이 끝나자 2인 1조로 팀이 짜였다. 한 팀 당 2명의 국회의원 보좌관과 30분씩 면담약속이 잡혀 있었다. 주의사항 몇 가지에 대한 로비스트의 마지막 다짐과 임시사무소의 비상연락전화번호를 받고 국회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나는 AAO의 배려로 대정부위원회 위원장과 한 팀을 이루게 되었다. AAO 의 배려라기보다는 불안감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다른 팀들과 달리 위원장은 상원의원실 두 곳과 하원의원실 한 곳 등 세 개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위원장은 별도로 미국치과의사협회 소속 로비스트와 의견조율을 한 후에 활동을 시작하는 등 온화하지만 철저한 분이었다. AAO 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법안이 몇 개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미 연방통상위원회 관할의 ‘The Red Flags Rule’ 이다.

 

이 법안은 공급자와 고객 사이에 서비스 혹은 물자의 공급이 발생할 때 그 비용의 수납과 관련해서 분납계획이 있는 경우 공급자를 채권자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서 진료비를 분납하는 경우 교정의사는 대출회사로 간주되고 따라서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서 은행 수준의 보안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은행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 법률이 통과되는 경우의 파장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 일이지만 이 법안은 시행 예정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연기되었는데, 내년에 시행되더라도 소상공인은 그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이 로비를 했던 회원 중에는 직원이 50명이 넘는 분도 있었는데 이분이 소상공인에 포함되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일정이 늦게 끝나서 예정된 미 대법원 견학을 못하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대법원 견학 일정을 확인하고 지인에게 부탁해서 미 의회 보좌관과의 면담을 부탁한 일이었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나도 외유할 때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곤 한다. 아빠가 미국의 수도를 방문한다는 말에 큰아이가 대법원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구경시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아빠라도 보고 이야기를 해주려고 일정을 마치기 무섭게 대법원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업무시간이 종료되어 견학을 할 수가 없었다. 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벌써 퇴근이라니. 대법원 활동을 참관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인이 마련해준 다른 상원의원 보좌관과의 저녁 자리에 개인자격으로 참석했지만 결국 AAO의 우려사항에 대해 로비를 하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수 년 전 한국의 주요 인사들 몇 분이 미 의회를 방문할 당시 보좌관들을 한국 국회의 보좌관 혹은 비서 개념으로 알고 상대하다 문제를 일으키고 귀국하신 적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미 의회의 보좌관은 국회의원의 정책 입안에 의견을 제출하는 씽크탱크의 역할을 하는 영민한 젊은이들의 집단이다. 나는 회원이 아니므로 AAO에 보고하지 않았기에 AAO에서는 모르고 있겠지만 사실 이날 AAO의 입장을 수 시간에 걸쳐 가장 활발하게 로비를 펼친 사람은 외국인인 내가 되고 말았다.

 

미국 국회의사당 천장 그림 사이에 새겨진 ‘E Pluribus Unum’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다양한 사람, 인종, 종교 및 조상에서 하나의 인간과 국가로 간다는 모토다. 다양한 의견이 하나되어 나온다는, ‘모두가 하나로’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포럼 중에 이번 외유의 경험이 떠올라 글로 남겨 보았다.